한국 현실부터 분석해내자 by 마케터

한국의 소위 진보학자들의 문제점은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도구로 외국사례를 너무 쉽게 가져온다는다는 데 있다. 물론 역사발전 단계의 선경험자의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좀 더 효율적인 결과물을 얻어내지는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선 한국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사를 망라해 대단히 복잡하고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을 밟았다. 따라서 지구적으로 그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증상이 복합적이고 입체적이고 만성적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대한민국이 만일 그럭저럭 경제성장과 민주주의가 발전해 선진국 단계에 오른다면 이태리의 나쁜 점, 미국의 나쁜 점, 한국의 나쁜 점이 골고루 섞인 이상한 변종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가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진보학자들의 문제는 이런 대한민국의 특수성의 과정을 대강 건너뛰고 외국 이론과 사례를 기계적으로 가져다가 억지로 발전전략으로 맞춘 다음, 정치 현실에서 부조화의 파열음이 일어나면 이를 모두 "덜떨어진 국민의식" 또는 "운이 따르지 않는 대외조건" 탓 등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증상은 계속 반복된다. 왜냐하면 대개 이런 진보학자들이 출판, 언론, 미디어 등의 매체 플랫폼을 장악하고 메시지를 생산해내다 보니 결과적으로 대중 역시,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 너무 쉽게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진보일각에서 또 불기 시작한 이른바 북유럽 모델이라는 것이다. 경북대 이정우 교수님이 대표적인 북유럽모델 신봉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정우 교수님 같은 분은 학자로서 존경하는 편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71004114101&Section=02

좀 답답한 게 이교수님도 그만큼 청와대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드려다 봤으면 북유럽 모델이라는 것이 왜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운지, 또한 설사 북유럽모델이 타당하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한국사회에서 어떤 조치들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아실만한데 대체로 이런 내용은 건너뛰고 곧바로 직진 드라이브를 거니 문제라는 말이다.

물론 이런 외국모델에 대한 초현실주의 드라이브는 이정우 교수님의 학자적 능력과 양심의 문제이기 보다는 어떤 정치적 입장에 경도된 매체의 문제일 수 있다. 핵심을 슬쩍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조금 다른 색깔로 윤색하여 특정 정책의 선전선동 팜프렛으로 만드는 재주가 우리 언론에겐 많이 있다는 거...이젠 뭐 놀라운 일도 아니다

진보학자들은 이제까지 진행되어온 대한민국의 국가주의 발전전략, 이른바 박통 전략을 대체할 수단으로 소련모델, 북한모델, 서유럽모델, 북유럽모델, 영미식모델 등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이중에서 소련/북한 모델은 이젠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게 되어 버렸고 남은 건 결국 영미식, 북유럽, 서유럽식 세 가지인데 진보학자들은 그중에서 북유럽식 (노르딕식)을 가장 진보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요즘 거의 모든 포커스는 북유럽식으로 맞추어져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당장 북유럽식을 이식시키는 게 과연 가능하겠는가?

이는 뭐랄까. 환자에게 CT나 MRI를 찍어보지 않고 외국 수술교본을 가져와 수술하겠다는 발상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환자 가족들이 이를 보면 수술을 하는 의사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의사가 상당히 권위적이고 또한 환자입장에서 더이상 대안 없는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한다면 찔끔하고 참고 물러나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의사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건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난 지금 현실에 대한민국에 북유럽식을 이식시키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다고 본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북유럽 모델은 대한민국 현실과 완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대표적으로 스웨덴)은 노동참여 비율이 80%, 그중 임금근로자의 비율이 80~90%다. 결국 노동인구의 70~80%가 소위 월급 받는 임금근로자이다. 또한 사회의 공정성, 공평성 시비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신뢰지수가 높은 사회다. 이는 언론, 행정제도 등이 공정성 시비를 하지 않도록 세련되게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노동참여율이 60~65%, 그중 임금근로자 역시 60%에 불과하다. 결국 노동인구중 임금근로자 비율이 고작 40%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언론, 행정등의 사회제도적 신뢰지수는 극악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북유럽 모델을 꺼내들면 과연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둘다일 가능성도 있고)

첫째 닥치고 재정 팽창이다. 공정한 시장의 평가가 부재한 사회에서 이해관계자들의 파열 없이 임금의 불균형을 시정하고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는 시장 기능, 그러니까 능력 효율 무시하고 막대한 임금보조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민주노총관계자가 방송에 나와서 1년에 10조씩만 국가에서 지원하면 간단하게 정규직 수준으로 비정규직을 컨버전 할 수 있다고 서슴없이 주장 하는 게 바로 이런 뜻이다. 결국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서 위래서 아래로 쏟아 부으면 다 해결된다는 발상이다.

그런데 과연 이른바 노르딕모델이 말하는 안정성과 효율이 이런 식으로 가당키나 할까? 이렇게 가다가는 노르딕 식으로 가기 전에 되려 라틴식 먹튀경제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결국 남미식 하이퍼 인플레이션 & 약탈경제 (눈먼 국가 돈 누가 먼저 먹나요 식)가 되지 않으리나는 보장이 없고 이를 시도한 정권은 앞으로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 것이 틀림없다.

둘째는 기득권끼리 이해관계 쟁탈이다

무조건 재정투입식이 아니라면 뭔가 시스템으로 재정투입의 합리적 근거를 정해야 한다. 북유럽 모델은 그 근간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두고 있다. 북유럽은 기후, 지형, 외교, 안보에 있어서 취약하다. 영토에 비해 인구도 적기 때문에 내부 대응력도 적다. 살아남기 위해선 대외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이런 조건하에서 필요한건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이 대타협 뿐이다. 그런데 타협은 신뢰가 있어야 하고 신뢰의 기반은 사회의 공정성과 공평성에 있다.

예를 들어, 북유럽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전통이 살아 있다. a라는 회사에서 일하나 b라는 회사에서 일하나 노동자 입장에서 같은 일을 한다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살아 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다 근로조건이 비슷하면 직업 간 보수격차도 적다. 이 모든 것이 능력위주의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단 능력에 의해 생산성이 평가되면 근무조건이나 회사형태에 따른 차이는 별로 없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되면 이해관계 조정이라는 것이 쉽게 된다. 왜냐하면 누가 대표가 되어도 전반적인 이해관계를 두루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예를들어 삼성 또는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것과 그들의 하청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과 임금차이는 많게는 50% 차이가 된다. 일의 난이도 차이가 있다고?. 뻥치지 마라. 어차피 중소하청으로 아웃소싱 하지 않았다면 그 일은 대기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결국 원가절감과 리스크 헤징이라는 측면에서 경영위험을 회피하고자 아웃소싱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자본이나 경영자의 위험회피 수단이 되는 것일 뿐인데 왜 근로자들의 임금차별로 까지 이어지느냐 말이다. 누가 이렇게 만든것인가. 결국 비슷한 일을 하고도 구조적 모순 때문에 대기업 근로자는 생산성 대비 과다한 임금을 중소기업 근로자는 상대적 저임금을 받는 게 된다. 대기업 노조 입장에서 볼때 "이건 우리가 투쟁해서 쟁취한거다"라고 말하겠지만 솔직히 이건 심각한 모순이다.

하지만 기업은 부족하나마 시장의 논리가 살아있으니 (개인능력이 아주 뛰어나면 혹시 점핑할 수도 있으니) 그나마 낫다.
공공기업의 근로형태, 대학교수, 교사, 공무원, 의사, 법조 등등이 지위와 보수체계는 좀 지나친 면이 많다. 왜 대졸자들이 공무원, 교사시험에 미치고 뛰어난 아이들이 죄다 의사 변호사로 몰리는가?. 이들 직업구조가 뭔가 자유시장 논리에서 벗어난 독점적 이익, 그러니까 지대추구라는 메리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의 기득권은 한순간의 이익이 아니라 대체로 지속적이고 영속적이다. 왜냐하면 기득권의 양을 이들 스스로 콘트롤(이익집단화, 노조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시정하지 않고 무슨 사회적대타협인가?

물론 우리에게도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노사정위원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노사정에 실질적인 타협의 가능성은 고사하고 대표성 자체가 확보되어있는지도 사실 의심스럽다. 과연 경총과 전경련이 중소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가? 과연 민노총, 한 노총이 중소기업 근로자, 비정규직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가?.게다가 우리는 근로자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근로자가 아닌 30% 달하는 자영업이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일자리 부족 때문에 아예 근로자에 속하지 못하는 300만에 달하는 잠재 실업자들도 있다. 이들은 어떤 명목으로도 노사정이라는 대타협에 포함되지도 못한다.

사실 내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노사정을 만들어놓고 대기업과 대기업 노동자의 합의를 통해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졌다고 믿는 그 똥배짱들이다. 거듭말하지만 이해관계자 조정이 광범위한 시장 참여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그건 말짱 황이다.  이런 한국적 상황을 그대로 둔 채 특정 정치세력이 정권모델로 '북유럽모델"을 차세대 성장발전전략으로 가져온다면 그때는 기득권끼리 이해관계의 조정만 하루 종일 하다가 5년 임기가 훌떡 지나가는 악순환이 연출될 것이라고 아주 난 확신한다.

진보 일각에는 여전히 복지국가 모델을 들고 오기도 한다. 어설픈 대중들은 복지국가라는 것이 개인의 책임을 국가의 책임으로 치환해 준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물론 우리가 복지예산의 확충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왜냐하면 OECD 국가에 비해 재정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기에 그런 거다. (우리는 미국에 비해 절반, 유럽에 비해 1/3 수준이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당장 우리가 진행해야할 국가목표인 것처럼 호들갑떠는 것도 현실의 우리 모습을 간과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단번에 그렇게 간다는 것은 무리라는 거다. 더욱이 복지국가의 방식이 당장의 증세를 통해서 재정을 늘리면 간단히 이루어진다는 식은 생각하기에 좀 어처구니가 없다.

서구의 복지국가 모델은 일단 자유주의 혁명과 자유주의 시스템을 거친 후 도달되었다. 봉건제 사회의 전근대성(신분계급, 관행, 지대등)을 개인의 자유와 능력이 경쟁되는 시장경제의 질서를 통해 혁파한 후 그 질서를 바탕으로 국가가 개입범위를 늘려가면서 복지국가 건설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전근대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국가의 힘으로 복지국가 모델이 진행된 사례는 소련과 북한 쿠바 베네수엘라 등인데 이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모델이 결코 아니다. (아마 일부는 이걸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전근대성이 남아 있다. 참여정부가 누누이 이야기했던 특권, 반칙, 기득권, 천민성이 바로 그것이다. 능력으로 평가되지 않고 혈연, 지연, 학연으로 연결되는 사회, 불균형 성장으로 과도한 부동산 이익이 보장되는 사회, 천민 자본주의 약탈성이 도드라지는 사회, 배타적으로 조직된 조직논리로 기득권이 보장되는 일종의 특권제 사회등..

이런 상황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국가권력이 복지국가 모델을 돌리면 어케될까?. 결국 국가가 조성한 재정의 상당수를 이들 기득권이 고스란히 다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건 구조적으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에 대한 확신과 질서의 확립, 민주주의 성숙에 따른 사회의 공정, 공평한 가치보상체계 정립, 엄격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문화 정립, 패자부활전과 평생교육 시스템 수립등 자유주의 개혁이 강력하게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정확보를 통한 복지국가 모델을 돌리면 결국 재정을 줄줄 세고 대중은 증세에 짜증을 내고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대중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다. 참여정부가 정치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에는 이런 증상도 일부 포함된다.

결국 한국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왜 우리가 연구를 운동처럼 강화해야 하는가? 이런 한국사회의 본질을 파헤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연구운동을 출판, 컨텐츠 생산 운동으로 확산해야 하는가. 이런 모순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현재의 출판, 컨텐츠 시장은 한국의 현실을 모르는 (아니 전반적인 모습은 감추고 이면만 드러내고 싶은) 강단좌파, 그러니까 외국이론 이식자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의 모순을 드러내지 않고 단지 목표 지향만 외국에서 빌려와서 그대로 이식하려하면 개박살이 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기에 더 현명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있다. 그러기에 더더욱 우리의 현실의 모순에서 해답을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외국의 경험이나 자료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현실을 먼저 파악하고 난 뒤 그 토대 위해 우리의 시스템을 만들 부품으로 필요한 것이지 그것이 설계도가 아니다 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http://www.goodpol.net/inquiry/statistics.board/entry/33 

좋은정치포럼 김대호 소장 - 복지가 아니라 정의가 먼저다 (참고해 보면 좋은글)


덧글

  • 새벽안개 2008/12/24 16:00 # 답글

    공감합니다.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수많은 대안들이 난무하지만 보고 있자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현실 분석과 현실 인식을 위해 공부열풍이 불어야 합니다.
  • Rheadism 2008/12/24 19:05 # 답글

    새로운 정치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한국적 현실'이라는 것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고려해야 좋은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물론 우리가 대단한 지적 능력을 발휘해서 한국적 특성에 맞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그럴 일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으로서는 영미식 모델보다는 북유럽식 모델에서 더 많이 배우는 게 경제의 양극화 해소 측면에서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만약 우리의 특수한 어떤 조건들때문에 북유럽에서 배울 수 없다면, 똑같은 논리도 미국 모델로부터도 배울 수가 없을 겁니다. 문제는 기본적으로 어떤 방향의 경제를 추구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미국식으로 가서 대다수를 빈곤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냐, 아니면 북유럽식으로 가서 좀 더 균등한 경제발전을 추구할 것이냐... 그리고 한국적 특성을 따지면서 초장부터 실현가능성을 문제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런 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영미식 모델보다는 유럽식모델이 삶의 질 측면에서 훨씬 건전하다는 게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문제는 의지라고 생각해요. 만약 이정우 교수가 어떤 정치적 포지션 때문에 말도 안되는 얘길 했다고 주장한다면, 반대의 논리도 가능하겠죠. 북유럽식은 우리한테 안맞다, 라는 주장 역시도 마찬가지도 어떤 정치적 목적 때문에 작위적으로 나온 것일 수 있다는 얘기죠.. 비록 겉으론 객관과 중립을 내세우곤 있지만 말이죠..
  • freesopher 2008/12/25 18:05 # 삭제

    공감합니다.
  • 쥐잡자 2008/12/25 18:23 # 삭제 답글

    모델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당이익 거두는 매국노들 부터 쳐 내면 엔간한 모델로도 우리나라는 양극화가 확 줄어든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잇을 것입니다.
  • 석조 2008/12/25 19:25 # 삭제 답글

    필자의 말처럼 한국은 대단히 미묘한 나라다. 근대화라고 말하지만, 왕정에서 시민들의 요구로 민주정으로 전환한 영국이나, 유럽, 그리고 왕정이지만 민주정을 도입한 북유럽과는 판이하게 다른 과정으로 민주정으로 들어섰다. 일제의 강점기에 의해서 왕정이 파괴되고, 대신 일제의 군국식 제국주의에 잠시 머물렀다가, 2차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로 불로소득으로 얻은 것이 민주정이다.
    이것은 국민들이 민주정치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없다는 소리다. 선거로 인한 국가의 대표를 뽑는 대의정치라는 것이 세습에 의해 권력을 유지하고 기득권이 되던 체제에서 미쳐 깨어나기도 전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즉, 옷을 입는데 내 몸에 맞추기 전에 남들이 좋다하는 것을 무조건 받아서 걸치고 그것에 몸을 맞추는 격이 된 것이다. 초창기 선거에서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가 극성을 이룰 때, 사실 그것을 받아 먹고 표를 찍어주는 국민 자체가 별로 죄의식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선거 운동에 빈손으로 찾아오면 버릇없는 인간이라고 욕조차 먹었다. 그것이 지금이라고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인텔리나 기득권층에 대한 책임감을 논하지만, 사실 그것을 지킨다고 해서 일반 서민들이 국민들이 높이 사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결국 메아리 없는 함성이 된다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엄수하면 그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흠을 잡아 헐뜯고 흠집 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좁은 땅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지역감정과 그에 편승한 이유없는 적개심이다. 지역감정도 적절하게 경쟁심으로 승화되면 도움이 되지만, 한국의 지역감정은 피가 흐르지않을 뿐이지 살벌하기 조차하다.
    즉, 한 지역에서의 우월감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의 이유없는 피해주의가 더 큰 문제이다.
    북유럽식을 모델을 삼으려면, 오랜 기간의 부의 축적이 있어야 한다. 스칸디나비아 3국은 엄청난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원을 국민의 것이라고 여기는 정치인들의 생각이 있다.
    오래전 바이킹 시절 부터 그들은 해외에서 약탈한 재화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 습성이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외국에서 모델을 찾으려면 정확히 찾아야 한다.
    권리청원, 권리장전, 마그나카르다,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무수한 시민과 정치인이 오랜 세월동안 피를 흘리면서 공동의 목표를 찾아낸 그 민주주의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한국은 해방 60년이 민주주의 역사의 전부다.
    솔직하게 아직 민주주의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 넘는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경제나 정치나, 민주주의인 대화와 토론과 그리고 다수결의 논리보다는, 힘과 어거지의 논리로 행하고 있다.
    다소의 무리가 모여서 목소리만 높이면 그것이 정의라는 어긋난 생각이 넘친다.
    국부론, 인구론, 경제학의 원리가 학문으로 연구되어 산업혁명을 일으킨 그런 경제 논리가 아니고, 돈 많고, 눈치 빠른 놈이 밥 한그릇 더 먹는다는 경제 원리에 젖어 있다.
    양반전에서 보여주는 매점매석의 논리, 그리고 아직 사농공상의 차별의식이 뚜렷한 사회. 그것이 문제다. 이 한국적인 문제점을 치유하고 계도하기 전에는 한참 동안 시끄러울 것이다.
  • 별헤는밤 2008/12/25 19:38 # 삭제

    북유럽이 사민주의 시작할 때는 그렇게 잘 살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사민주의하기에 100% 맞는 조건은 아니었죠.
    자원은 많다고 하지만 교통 여건이 영 안 좋습니다.

    저는 역사란 여러 조건도 영향을 주지만, 인간의 의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한국은 민주주의의 열정이 넘칩니다. 비록 60년 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초기부터 민주주의 선거의 원칙을 사수하였습니다. 그것이 4.19 아닙니까?
    또한 한일협정 반대 시위 이래 수많은 학생 시위,
    노동운동의 성장과 여러 시위들,
    5.18 광주에서의 시민 봉기 등등...
    우리는 격동의 시기 동안 많은 것을 이루어왔습니다.
    이 역사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발견해 온 과정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자랑스러워 해도 됩니다.
    부족해보이지만 나름 충분한 전통 아닐까요?
    민주주의의 전통이 없다면 끊임없이 재발견하고 만들어내면 됩니다.

    거기에다 우리는 점점 약화되고 있는 지역주의를 보게 됩니다.
    특별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 이후 이전보다 지역감정이 많이 개선되었죠.

    다만 문제는 아직도 정치 갈등선이 노동vs자본의 축이라기 보다는
    진보vs보수라는 점에 있습니다.

    하지만 60년 동안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아직 우리에게 있다면
    저는 한국에 희망을 걸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 일본과 중국에 비해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과 민주주의는 많이 발전했잖아요.
  • 별헤는밤 2008/12/25 19:26 # 삭제 답글

    으음.. Rheadism님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일단 방향성 쪽은 북유럽 쪽으로 하는 것이 저도 옳다고 봅니다.
    다만 한국의 현실과 너무 괴리가 크다는 것이 문제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위에서 부과된 정책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또 지금까지 북유럽 모델의 역사적 분석이 잘 거론되지 않은 채 그저 모델만 이식시키기만 했죠.
    하부의 변화는 고려하지 않구요.

    분석의 부재에 대해 저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분석이 부재하다고 해서 그 비전까지 무시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분석과 비전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해할 수 없는것은 2008/12/25 20:18 # 삭제 답글

    진보학자들의 일부의 주장만을 걸러내서 비판하신 것은 아닌가 합니다. 현실에 대한 지적은 공감가는 부분이 많습니다만, 그 해법이라는 것이 북유럽 모델을 신봉하는 진보학자 이상으로 비현실적이네요. 철저한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시스템을 수립한다고 하여 혈연, 지연 어쩌고하는 것을 타파해야 된다고 하는데.. 과연??? 이미 그런 방식으로 사회의 계층구조를 붕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런 방식들은 이미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의 권익을 더욱더 공고하게 해주죠. 그런 것을 모르실리 없으실텐데.. 단적인 예로 현재 교육기회 자체도 이미 그 격차가 엄청나지 않나요? 그로써 혜택 받는 사람들이 누군지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복지라는 것이 단순히 없는사람들한테 금전적인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죠. 이미 그런 균형은 깨진지 오랜 상황에서 님께서 주장하신 해법들은 너무 공허합니다.
  • 눈을 뜨자 2008/12/25 20:19 # 삭제 답글

    용두사미! 길지만 끝이 허망한 글. 우리에게 맞는 시스템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가? 현재까지 서유럽이나 북유럽모델을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 있나? 이것저것 다 싫다면서 대안은 없고, 이분의 글은 허망함이 특징인 것 같다.
  • th 2008/12/25 20:59 # 삭제 답글

    한나X당 개새X 같은 단순무식한 글을 쓰면
    무슨 위대한 영웅 나온것 처럼 받쳐주는 것이 민주주의 라는
    어처구니 없는 글보다는 100배 좋네요.

    어차피 대한민국의 암적인 존재라는 사람 욕만하는게 뭔 도움이 됩니까?

    자기가 생각했을때 발전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더 잘할수 있게
    비판도 하고 격려도 하는게 제1순위 인데.. 그저 XX당 개새X.. 뿐..
  • 진보만의문제는.. 2008/12/25 20:59 # 삭제 답글

    아닌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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