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가 자꾸 무기력해 진다는 느낌 by 마케터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의 미디어법 날치기(불법 처리)가 이어지고 나서 이를 규탄하는 집회가 여기저기서 열렸다. 그러나 그 참여범위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물론 혹서기에 휴가 시즌이 겹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개념부족이다. 미디어법의 쟁점은 대중이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주제다. 솔직히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도 미디어법의 내용을 잘 모르는데 일반 국민이 세부내용과 본질을 파악한다는건 어쩌면 쉬운일이 아니다.  

둘째는 무기력중이다, 대중동원이 안되는 이유로 치면 이것이 좀더 크다. 국민들은 이제 장외집회등으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압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 원천적으로 소통이 안되는 상대에게 입아프게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체득한것이다.

이 분위기는 지리하게 이어질 것이다. 10월 재보선까지는 현상황이 그냥 깔꺼다. 헌재의 판단에 기대하는 눈치도 있던데 그 역시 시간으로 치면 하세월이다. 게다가 솔직히 헌재를 뭘로 믿나?. 헌재는 87년 헌법체제(적당히 나눠먹기)가 만든 기형적 결과물인데 그 효율은 이제 시효를 다했다고 본다

감 떨어질때까지 지리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대중에게는 견디기 힘든일이다. 반면 이런 상황을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권은 기대하고 있다. 어차피 대중은 시간이 흐르면 파편화되고 분열화, 개인화 되어 결집력을 확보하지 못할테니까..

결국 대중(시민세력)이 참여할 수 있는 (촛불시위를 능가할) 새로운 참여꺼리를 만들어야 이 지리한 교착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참여꺼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창출해내면 다시금 에너지가 생성되고 이 에너지는 변화의 속도감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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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그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만이 민주주의를 지켜낼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깨어있는) 조직된 시민의 행동이 과연 무엇인겠는가 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집회라고도 하고 투표라고도 한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촛불시위를 그리 오래해도 변화의 속도(에너지)는 좀처럼 가시화 되지 않는다. 되려 점점 감각은 무뎌져만 갔다

투표 역시 하나의 계기(모멘텀)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여러가지 왜곡된 현상(지역주의)에 포위되어 있고 또한 상시적인 민심의 흐름이라기 보다는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할 수 있다. 솔까말, 일순간 불꽃이 점화되기는 해도 지속성을 가진 에너지로 교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 크게 타올랐다가 사그라드는 불꽃처럼 너무 식상해지는 면이 있다.

나는 노대통령께서 이런 일회성 현상을 두고 "잘 조직된"이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해답은 좀더 다른곳에 있겠다.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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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행동이 상시적으로 자연스럽게 조직되고 발현되는곳, 예전에는 이런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02년 대선을 계기로 인터넷 공간이 이런 역할을 만들어 냈다.  특히 서프라이즈나 아고라 같은 곳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현재 정체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촛불시위 처럼)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구조들이 플랫폼화 되지 못했다는데 있다. 인터넷 기반의 근거지들이 플랫폼화 되었다면 이렇게 맥없이 끌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는 인터넷 기반이라는 것이 참여자들의 경제적 생태계를 구축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외부로부터 영양이 공급되지 못해 성장이 멈춰버린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다. 처음에는 성장이 반짝했지만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것이다. 키가 자리지 않고 체격이 커지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만들 기능이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컨텐츠- 커뮤니티-커머스-커뮤니케이션"

만일 서프라이즈나 아고라에 모인 사람들끼리 (신뢰를 바탕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 거래하는 시장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아마 연대의 신개념이 창출되었을 것이다. 뜻이 맞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는 공간이 되면서 유통비용을 축소하여 가격을 낮추는 효과도 만들었을 것이다. 이럼 새로운 가치가 폭발하게 된다.

인터넷 세력은 일종의 신문명 세력이다. 그렇다면 그것에 걸맞는 거래모형(신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구조를 통해 새로운 부의 창출과 자원의 배분을 이루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신문명세력은 컨텐츠를 생산하는 단계에만 머물러 있고 이를 유통 소비하는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반면, 구세력은 유통과 소비라는 단계를 선점하고 여기서 부를 창출하고 있으면 기득권의 헤게모니를 고수하고 있다.결국 유통과 소비라는 단계에서 구세력과의 전쟁에서 교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여기를 돌파해내는 것이 (시민행동= 신문명 세력)앞으로의 핵심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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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 보면 미디어법의 본질은 유통과 소비의 기득권을 구세력이 계속해서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성벽을 치고 게이트를 장악한뒤 문을 왕래하는 사람에게 입장료를 받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럴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을 지키는 주인을 바꾸는 방식 (선한 문지기로)은 일시적 방법일 수는 있어도 궁극의 처방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입장료를 받는 방식이 아닌, 장터를 만들고 (신뢰를 바탕으로) 누구나 가치를 교환하게 만들고 대신 그 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 유효하다고 본다.

이러면 성벽 만들어 입장료 받는 방식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겨지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성벽(기득권)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이것이 세상의 문명의 진화되어온 방식이다.

촛불시위 그 이후의 행동은 신뢰하는 사람들끼리의 새로운 시장을 창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상품 ,서비스 거래의 모형을 꾸준히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폭발적인 성장을 만들어내면 구세력의 기득권은 순간 와해될 수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신문명세력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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